이런 낭패
-도광의(1941~ )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간밤에 마신 술 탓에
새순 나오는 싸리울타리에
그만 누런 가래 뱉어놓고 말았다
늦은 귀향 길 안쓰런 마음 더해가는
고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실수에
무안해 하는데
때마침 철 늦은 눈이
내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시인은 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술을 많이 드시는데, 제자들이 쩔쩔맬 정도다. 수십 년 뵐 때마다 선생님은 당신의 고향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중에 내 죽거든 우리 고향에 아주 조그마한 시비 하나 세워다오. 이 낭만적인 말씀을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들었다. 시인에게 고향이란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공간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미안하고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면 그는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인은 자신의 허물을 덮어 주기 위해 고향에 눈이 내린다고 말한다. 아마 도시에 눈이 내렸다면 이러한 성찰의 시간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이런 낭패
-도광의(1941~ )

간밤에 마신 술 탓에
새순 나오는 싸리울타리에
그만 누런 가래 뱉어놓고 말았다
늦은 귀향 길 안쓰런 마음 더해가는
고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실수에
무안해 하는데
때마침 철 늦은 눈이
내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시인은 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술을 많이 드시는데, 제자들이 쩔쩔맬 정도다. 수십 년 뵐 때마다 선생님은 당신의 고향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중에 내 죽거든 우리 고향에 아주 조그마한 시비 하나 세워다오. 이 낭만적인 말씀을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들었다. 시인에게 고향이란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공간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미안하고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면 그는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인은 자신의 허물을 덮어 주기 위해 고향에 눈이 내린다고 말한다. 아마 도시에 눈이 내렸다면 이러한 성찰의 시간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이런 낭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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