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늪의 내간체를 얻다 -송재학(1955~)

~Wonderful World 2017. 11. 17. 16:20

늪의 내간체를 얻다
                              - 송재학(1955~)

너가 인편으로 붓던 보자(褓子)에는 늪의 새녘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매듭을 풀자 믈 우에 누웠던 항라(亢羅) 하늘도 한 웅큼.  되새 떼들이 방금 밝고 간 발자곡도 구석에 꼭두서니로 염색되어 잇다  수면의 믈거울을 걷어낸 보자 솝은 흰 낟달이 아니라도 문자향이라더라  바람을 떠나자 수생의 초록이 눈엽처럼 하늘거렸네  보자와 매듭은 초록동색이라지만 초록은 순순히 결을 허락해 머구리밥 사이 너 과두채 내간(內簡)을 챙겼지 도근도근 매듭도 안감도 대되 운문보라 몇 점 구름에 마음 적었구나  한 소솜에 유금(游禽)이 적신 믈울들 내 손등에 미끄러지길래 부르르 소름 돋았다  그만한 고요의 눈ㅅㄷㅣ를 보니 너 담담한 줄 짐작하겠다  빈 보자는 다시 보낸다  아아 겨울 늪을 보자로 싸서 인편으로 받기엔 너무 차겠지 향념(向念)

낯선 한글 표기와 한자어에 놀라지 말고 천천히 새겨 읽어야 한다. 시인은 일부러 조선시대 여성들의 한글 문체인 내간체의 표기 방식을 활용해 기막히게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완성했다. 보자기를 보낸 여동생에게 언니가 보내는 답장 형식이다. 여동생은 그 보자기에 무얼 싸서 보냈나? 그건 늪의 풍경이다. 자매지간에 마음과 마음을 헤아리는 품격이 마치 고요한 초록 늪의 그것과 닮았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항라(亢羅) 
명주, 모시, 무명실 따위로 짠 피륙의 하나. 씨를세 올이나 다섯 올씩 걸러서 구멍이 송송 뚫어지게 짠 것으로 여름 옷감으로 적당하다.

되새
<동물>
되샛과의 겨울 철새. 몸의 길이는 14cm 정도이며 등은 검은색, 허리는 흰색, 배와 어깨는 누런 적갈색이다. 가을과 겨울에 떼를 지어 날아오고 다음 해에 동반구 북부 삼림 지대에서 번식한다. [비슷한 말] 화계3. (Fringilla montifringilla)(花鷄)


명사
<옛말>
‘속1’의 옛말

눈엽
명사<식물> [같은 말] 어린잎(새로 나온 연한 잎).

머구리밥
명사[옛말] ‘개구리밥(개구리밥과의 여러해살이 수초(水草))’의 옛말.

내간(內簡)
명사
부녀자가 쓰는 편지. [비슷한 말] 내서1(內書)ㆍ내찰(內札)ㆍ안편지.

소솜
순우리말
소나기가 한 번 지나가는 동안. 곧, 매우 짧은 시간.

유금(游禽)
<동물>

[같은 말] 유금류(물 위를 헤엄쳐 다니는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향념(向念)
[같은 말] 향의1(向意)(마음을 기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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