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더 쨍한 사랑 노래 - 황동규(1938~)

~Wonderful World 2017. 11. 22. 15:36
더 쨍한 사랑 노래  
-황동규(1938~)
 
시아침 11/21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地表)에서 휘발하고 
저녁 하늘  
바다 가까이 바다 냄새 맡을 때쯤  
바다 홀연히 사라진 강물처럼  
황당하게 나는 흐른다.  
하구(河口)였나 싶은 곳에 뻘이 드러나고  
바람도 없는데 도요새 몇 마리  
비칠대며 걸어다닌다.   
저어새 하나 엷은 석양 물에 두 발목 담그고  
무연히 서 있다.  
흘러온 반대편이 그래도 가야 할 곳,  
수평선 있는 쪽이 바다였던가?  
혹 수평선도 지평선도 여느 금도 없는 곳?  
 
사랑하는 이의 기척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와 내가 끌고 온 시간에 쨍하고 금이 갔다는 거다.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헤아리던 마음은 도요새와 저어새 같은 뻘의 풍경 쪽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 시의 핵심은 마지막 석 줄이다. ‘그래도’에 담긴 어찌할 수 없는 한숨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모든 경계가 사라진 쪽으로 ‘그래도’ 가야 하는 운명을 읽어야 한다. 강이 지평선을 버리고 바다에 이르면 강이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바다로 스며들 듯이.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더 쨍한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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