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들, 시인들

찬비 내리고-편지1-나희덕

~Wonderful World 2018. 1. 8. 06:47

찬비 내리고 - 편지 1-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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