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 나희덕
내가 기대어 살아온 것은 정작
허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채우면 이내 사라지는, 허나
다시 배고픈 영혼이 되어
무언가를 불러대던 소리, 눈빛, 몸짓, 저 냄새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은
그런 지푸라기에 붙인 불꽃이었을까
그러나 허기가 아니었다면
한 눈빛
어떤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한 손이 다른 손을 잡을 수는 있었을까
허기로 견디던 한 시절은 가고, 이제
발자국조차 남길 수 없는 자갈밭 같은 시대
거기 메아리를 얻지 못한 소리들만 가라앉아
뜨겁게 자갈을 달구는 시대
불타도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그 앞에 신이라도 벗어야겠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그리로 그리로 기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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