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들, 시인들

나희덕, '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Wonderful World 2018. 1. 18. 10:26

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 나희덕


내가 기대어 살아온 것은 정작 

허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채우면 이내 사라지는, 허나 

다시 배고픈 영혼이 되어 

무언가를 불러대던 소리, 눈빛, 몸짓, 저 냄새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은 

그런 지푸라기에 붙인 불꽃이었을까 

그러나 허기가 아니었다면 

한 눈빛

어떤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한 손이 다른 손을 잡을 수는 있었을까

허기로 견디던 한 시절은 가고, 이제

발자국조차 남길 수 없는 자갈밭 같은 시대 

거기 메아리를 얻지 못한 소리들만 가라앉아 

뜨겁게 자갈을 달구는 시대 

불타도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그 앞에 신이라도 벗어야겠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그리로 그리로 기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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