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
-박서영(1968~2018)
숨을 곳을 찾았다
검은 펄 속에 구멍을 내고 숨은 지렁이처럼
침묵은 아름다워지려고 입술을 다물었을까
분홍 지렁이의 울음을 들은 자들은
키스의 입구를 본 사람들이다
그곳으로 깊이 말려 들어간 사랑은
흰 나무들이 서 있는 숲에서 통증을 앓는다
입술 안에 사랑이 산다
하루에도 열두 번
몸을 뒤집는 붉은 짐승과 함께
사랑의 화살에 적중당해 피 흘리는 이 사람의 선택은 숨는 것이다. 숨길 수 없는 것을 숨기려고 사랑은 침묵이 되었다가, 견디지 못해 금세 울음으로 변한다. 이 입속의 검은 숲에서 울음은 또 통증을 붙잡고 신음이 되는 거겠지. 신음의 뿌리가 신열이기에, 입 맞추고 싶어 하는 사랑은 말을 잃고 꿈틀대는 혀로 붉어지는 거겠지. 혀는 사랑의 언어이고 사랑의 몸이다. 죽을 것도 살 것도 같아서 몸은 웅얼거린다. 사랑이여 놓아다오. 아니, 부디 놓지 말아다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박서영(1968~2018)
숨을 곳을 찾았다
검은 펄 속에 구멍을 내고 숨은 지렁이처럼
침묵은 아름다워지려고 입술을 다물었을까
분홍 지렁이의 울음을 들은 자들은
키스의 입구를 본 사람들이다
그곳으로 깊이 말려 들어간 사랑은
흰 나무들이 서 있는 숲에서 통증을 앓는다
입술 안에 사랑이 산다
하루에도 열두 번
몸을 뒤집는 붉은 짐승과 함께
사랑의 화살에 적중당해 피 흘리는 이 사람의 선택은 숨는 것이다. 숨길 수 없는 것을 숨기려고 사랑은 침묵이 되었다가, 견디지 못해 금세 울음으로 변한다. 이 입속의 검은 숲에서 울음은 또 통증을 붙잡고 신음이 되는 거겠지. 신음의 뿌리가 신열이기에, 입 맞추고 싶어 하는 사랑은 말을 잃고 꿈틀대는 혀로 붉어지는 거겠지. 혀는 사랑의 언어이고 사랑의 몸이다. 죽을 것도 살 것도 같아서 몸은 웅얼거린다. 사랑이여 놓아다오. 아니, 부디 놓지 말아다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꽃 언덕에서-유안진(1941~) (0) | 2018.03.01 |
---|---|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이성복(1952~) (0) | 2018.03.01 |
몸의 중심-정세훈(1955~) (0) | 2018.02.22 |
지울수 없는 얼굴-고정희(1948~1991) (0) | 2018.02.20 |
작년 그 꽃-윤제림(1960~) (0) | 2018.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