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돌아보는 사이, 돌아눕는 사이 ― 고영민 (1968~ ) [조선/ 2018.07.23]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21] 돌아보는 사이, 돌아눕는 사이](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807/22/2018072201934_0.jpg)
돌아보는 사이, 돌아눕는 사이 ― 고영민 (1968~ )
큰비 오고 나자
담장 위 능소화가 온통 바닥에 꽃을 쏟았다
내가 돌아보는 사이,
내가 돌아눕는 사이,
쥐고 있던 손모가지 턱, 놓아버렸다
이젠 꽃도 버겁다
꽃을 팽개친다
하늘로 밤새 접은 말잠자리나 날리러 가자
하지만 꽃은 태연히
찬 바닥, 젖은 두 무릎 모으고 앉아
훌쩍훌쩍, 눈물만큼
그 꽃만큼
이빨 자국처럼
며칠 낮밤을 한사코 줄기도 없이 피어 있다
태양이 이웃에 와 있습니다. 거리는 불덩어리가 된 듯합니다. 정원 담장의 능소화는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찬란하고 씩씩합니다. 횃불같이 타오르는 빛깔로 여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비 한번 지나가면 담장 바닥이 붉은빛으로 낭자해집니다. 통꽃으로 쏟아져 머뭅니다. 예고나 징후가 없지요.
잠시 방심한 사이에 떨어져나간 것 없었나요? 혹시 사랑이 그렇지 않던가요? 어느 순간 팽개치고 싶은 것 없었나요? 간혹 사랑이 그렇지는 않던가요?
'이젠 꽃도 버겁다'는 구절을 실감하는 때가 있지요. 무더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너무 무거운 꽃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버거운 꽃은 내려놓고 가뜬한 '말잠자리나' 날리러 가는 게 사람 마음. '존재' 자체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은 한여름입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출처 : 설지선 & 김수호
글쓴이 : 설지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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