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속으로 저무는 풍경
-남진우(1960~ )
땅거미가 다가온다
한 뼘 한 뼘 남은 햇살을 지우며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땅거미의 그물
땅거미가 친친 온몸을 휘감고 내 안으로 기어들어온다
휘황한 바람소리만이 쌓여 있는
텅 빈 몸 속
적막하게 펼쳐진 갯벌에 집을 짓는 땅거미
어느덧 감겨진 내 눈에서도
검은 거미줄이 스며나온다
땅거미가 나를 잡아먹는 광경이다. 아니 내가, 땅에 사는 거미인 듯 어스름인 듯도 한 정체불명의 기분에 잡아먹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저물녘 내 마음은 텅 빈 갯벌인데, 거미줄은 바로 그 마음을 삼키고 있다. 오늘은 무슨 일이 터졌나. 또는 무슨 기대가 기대에 그치고 말았나. 한길에 붙박인 내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흐르는 것 같고, 그물은 저녁을 다 덮어 가는데, 대체 거미는 쉭쉭 거리며 어디 숨었나.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땅거미 속으로 저무는 풍경
-남진우(1960~ )

시아침 10/24
한 뼘 한 뼘 남은 햇살을 지우며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땅거미의 그물
땅거미가 친친 온몸을 휘감고 내 안으로 기어들어온다
휘황한 바람소리만이 쌓여 있는
텅 빈 몸 속
적막하게 펼쳐진 갯벌에 집을 짓는 땅거미
어느덧 감겨진 내 눈에서도
검은 거미줄이 스며나온다
땅거미가 나를 잡아먹는 광경이다. 아니 내가, 땅에 사는 거미인 듯 어스름인 듯도 한 정체불명의 기분에 잡아먹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저물녘 내 마음은 텅 빈 갯벌인데, 거미줄은 바로 그 마음을 삼키고 있다. 오늘은 무슨 일이 터졌나. 또는 무슨 기대가 기대에 그치고 말았나. 한길에 붙박인 내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흐르는 것 같고, 그물은 저녁을 다 덮어 가는데, 대체 거미는 쉭쉭 거리며 어디 숨었나.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땅거미 속으로 저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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