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세상
-이만식(1960~ )

시아침 11/19
나는 잠이 안 와서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다.
내가 나중에 죽을병에 걸려서 나름대로 아비규환일 때
아이티여, 너는 심심한 오후에 따뜻한 차를 마셔라.
안방에 전송되는 영상은 실황이지만 먼 곳의 일이다. 마음과는 달리 재난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봐야 하는 데 아픔이 있고 시름이 있다. 속수무책인 나는 나의 병을 상상으로 불러놓고 아이티의 평온을 힘없이 응원해본다. 이 무력한 바람, 무력한 속앓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이런 상상의 공평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앓는 마음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공평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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