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전례-이화은(1947~ )

~Wonderful World 2018. 11. 14. 12:40
전례                   
-이화은(1947~ )

  
시아침 11/14

시아침 11/14

재의 수요일
 
사제는 내 이마에 재를 얹었다
 
이곳의 죄는 모두 소멸되었다  
  
순결의 땅임이 증명된 것이다
 
내게 죄 없는 몸이 한 뼘이나 있다니
 
이마에 닿았던 뜨거운 입술의 흔적은
 
이제 유적이 되었다
 
 
전례 미사가 집전되는 참회의 날에 사제가 내 이마에 재를 뿌린다. 죄는 씻기고 그곳은 깨끗해졌다 한다. 사랑도 통증이고 죄도 통증이어서 분간도 수습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불이 지나갔다고 해야겠지. 뜨거운 입술이 닿았던 한 뼘의 이마만이 죄 없는 땅이라니. 유적은 사람이 더는 살지 않는 곳이다. 사랑의 기억이 된, 이 깨끗하고 어룽어룽한 흔적을 다른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될까.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전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