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
-장옥관(1955~ )
재취 간 엄마 찾아간 철없는 딸처럼, 시누이 몰래 지전 쥐어주고 콧물 닦아주는 어미처럼
나와서는 안 되는 대낮에
물끄러미 떠 있다
떠올라서는 안 되는 얼굴이, 밝아서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어도 없는 듯 지워져야 할
얼굴이 떠 있다
화장 지워진 채, 마스카라가 번진 채
여우비 그친 하늘에
성긴 눈썹처럼, 종일 달인 국솥에
삐죽이 솟은 흰 뼈처럼
해 아래 드러나면 서러운 것들. 외로운 딸과 난감한 어미 같은 지상의 고아들을 대신해 달은 낮에 떴다. 눈물에 화장이 지워진 옛날의 얼굴도 그 얼굴의 희미한 눈썹도 숨어서 빼꼼 내다본다. 우리는 우리 시름을 다 여밀 수 없다. 불현듯 걸음을 멈추고 눌러두었던 기억들을 올려다보는 시간. 고운 어둠이 바삐 와 달을 활활 태워 주었으면.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낮달
-장옥관(1955~ )

시아침 12/19
나와서는 안 되는 대낮에
물끄러미 떠 있다
떠올라서는 안 되는 얼굴이, 밝아서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어도 없는 듯 지워져야 할
얼굴이 떠 있다
화장 지워진 채, 마스카라가 번진 채
여우비 그친 하늘에
성긴 눈썹처럼, 종일 달인 국솥에
삐죽이 솟은 흰 뼈처럼
해 아래 드러나면 서러운 것들. 외로운 딸과 난감한 어미 같은 지상의 고아들을 대신해 달은 낮에 떴다. 눈물에 화장이 지워진 옛날의 얼굴도 그 얼굴의 희미한 눈썹도 숨어서 빼꼼 내다본다. 우리는 우리 시름을 다 여밀 수 없다. 불현듯 걸음을 멈추고 눌러두었던 기억들을 올려다보는 시간. 고운 어둠이 바삐 와 달을 활활 태워 주었으면.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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