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유(逍遙遊)
-장주(莊周 BC 369~ 286년 추정)
무릇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파인 곳에 물 한 잔을 부으면 검불은 떠서 배가 되지만, 잔을 얹으면 바닥에 닿고 만다. 물은 얕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실을 힘이 없다. 그러므로 9만 리를 솟아올라야 날개를 띄울 바람이 아래에 쌓이게 된다. 그런 다음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지게 되는데, 누구도 그 앞을 막지 못한다. 그런 후에야 아득한 남쪽(南冥)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가까운 들로 나가는 사람은 세 끼만 준비해도 돌아와 배가 부르지만, 백 리를 가려는 자는 밤새워 방아를 찧어야 하고, 천 리를 가려는 자는 석 달은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매미나 비둘기들이 어찌 이를 알겠는가.
‘장자’ 소요유의 한 대목. 북녁바다(北冥)의 곤(鯤)이 붕(鵬)으로 변해 9만 리를 솟구쳐 올라 여섯 달을 남으로 날아간다는 장대한 얘기의 뒷부분이다. ‘장자’는 호방한 상상의 스케일과 긴 시간에 대한 한자 문화권 특유의 낙관을 대표한다. 먼 길에 초조해 할 것이 아니라 오직 바람이 두터운가 볼 뿐, 9만 리 바람의 힘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날개와 바람은 어떠한가. 붕정만리의 저 두텁고 긴 호흡을 잊지 않을 일이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소요유(逍遙遊)
-장주(莊周 BC 369~ 286년 추정)

바람이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실을 힘이 없다. 그러므로 9만 리를 솟아올라야 날개를 띄울 바람이 아래에 쌓이게 된다. 그런 다음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지게 되는데, 누구도 그 앞을 막지 못한다. 그런 후에야 아득한 남쪽(南冥)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가까운 들로 나가는 사람은 세 끼만 준비해도 돌아와 배가 부르지만, 백 리를 가려는 자는 밤새워 방아를 찧어야 하고, 천 리를 가려는 자는 석 달은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매미나 비둘기들이 어찌 이를 알겠는가.
‘장자’ 소요유의 한 대목. 북녁바다(北冥)의 곤(鯤)이 붕(鵬)으로 변해 9만 리를 솟구쳐 올라 여섯 달을 남으로 날아간다는 장대한 얘기의 뒷부분이다. ‘장자’는 호방한 상상의 스케일과 긴 시간에 대한 한자 문화권 특유의 낙관을 대표한다. 먼 길에 초조해 할 것이 아니라 오직 바람이 두터운가 볼 뿐, 9만 리 바람의 힘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날개와 바람은 어떠한가. 붕정만리의 저 두텁고 긴 호흡을 잊지 않을 일이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소요유(逍遙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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