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에게 주노라
쓸쓸하고 못내 외로운 이 편지를
몇 글자 적노니
서럽다는 말은 말기를
그러나 이 슬픔 또한 없기를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 사람 볼 일이요
그 사람 없을 때 또한 잊을 일이다
언제 우리가 사랑했던가
그 사랑 저물면
날 기우는 줄 알 일이요,
날 기울면 사랑도 끝날 일이다
하루 일 다 끝날 때 끝남이로다
쓸쓸과 외로움, 서러움과 슬픔이란 말들이 과한듯 엎질러져 있지만, 말을 싣고 흐르는 리듬 감각, 우리말의 음수/음보적 매력에 들린 시인의 호흡에 의해서 미적 균형이 지탱된다. 나아가 이 힘이 끝 두 연의 잠언투에 처연하고 서늘한 울림까지를 부여하고 있다. 박정만은 1981년 뜻밖의 필화사건으로 기관의 폭력에 시달린 뒤, 건강과 가정을 모두 잃고 술과 시로 견디다가 쓰러졌다. 제목도 없는 두 줄의 시가 유고 뭉치 속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사라진다/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