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핑 시들...^~

비오는 날에 - 나희덕(1966~)

~Wonderful World 2021. 1. 21. 16:14

비오는 날에 - 나희덕(1966~)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뿌리를 지니고 있어

비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산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며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엊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이 비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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