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산책’ 중-김형영(1945∼ )

~Wonderful World 2009. 4. 4. 04:59

‘산책’ 중-김형영(1945∼ )

 

 

 

아침마다 숲길을 거닙니다.

움 트고 새 날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아도

숨구멍은 저절로 열리고

가지에 바람이 흔들립니다.

발걸음이 빨라지면

나무들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속상한 날이건 즐거운 날이건

그런 건 다 내뿜어버리고

제 생명의 입김 실컷 마시라 합니다.

숲 속 한 시간으로

하루 스물 세 시간이 편안합니다.

어제 마신 술은 냉수가 되고

피운 담배도 안개처럼 걷힙니다.

오늘도 숲길을 거닙니다.

비가 오면 비와 더불어

눈이 내리면 눈과 더불어

바람이 불면 바람과 더불어

나는 날마다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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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선종하신 추기경님 딱 하나 손에 꼭 쥐고 가신 나무 묵주(<9ED9>珠). 한마디 말 건네지 않아도 그 청빈한 사랑 온 세상 향기롭게 퍼집니다. 바보 별님 되어 오늘도 말없이 그 나무 묵주 사랑 굴리시겠지요. 이 시에서 나무들 모두 추기경님 그 사랑의 영성 지니고 있네요. 생명의 숨결 한껏 불어넣어 만물의 숨구멍 열어주며 사랑의 천지 창조하네요. 고마운 나무, 내일 그런 사랑 심는 식목일이네요. 이경철·문학평론가
2009.04.04 00:2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