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들, 시인들

‘견딜 수 없네’-정현종(1939~ )

~Wonderful World 2010. 2. 21. 19:12

‘견딜 수 없네’-정현종(1939~ )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흘러가는 것, 지나간 시간들의 상처. 추억이 아니라 상흔이라니. 이 가을 내 마음도 여리어져 견딜 수 없네. 인간적으로 터진 한탄도 이리 정갈할 수 있을까. 『시경(詩經)』에 공자 이르길 즐겁되 음탕하지 말고 슬프되 너무 상심해 울지 마라 했거늘. 무상(無常)에 대한 눈물 보이지 않는 아픔의 운율, 시월의 마지막을 더 아프고 견딜 수 없게 하네.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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