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나무 사이에 소리가 있다 나무 사이에 소리가 있다 - 조용미(1962 ~ )
나뭇잎 하나하나가
다 귀가 되어
한 곳을 향하고 있다
키 큰 나무들,
오동나무와 대나무와 뾰족하고 잎사귀 많은
비파나무들, 어둑한 날
그들의 손에 온순하게 갇혀 있는
그토록 사나운 짐승인
바람은
사각사각 내려앉고 있는
달빛 물어뜯으려
숨을 고르고 있지
나무 사이에 나뭇잎 사이에
보이지 않는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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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이 저마다의 정밀(靜謐)을 안은 채 숨죽이고 있다. 그것을 지극한 긴장이라고 해야 하나, 고요라고 해야 하나. 금방이라도 깨뜨려질 동력들을 잔뜩 품은 내면의 시간들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불던 바람도 숨을 고르는 이 순간의 고요를 물어뜯으려고 서늘하고 날카로운 예각들이 발톱을 곤두세우고 있다니.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고요를 품고 있는 것은 내 속의 불안이다. <김명인·시인>
편지 - 채호기 (1957~ )
맑은 물 아래 또렷한 조약돌들
당신이 보낸 편지의 글자들 같네.
강물의 흐름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편안히 가라앉은 조약돌들
소곤소곤 속삭이듯 가지런한 평온함.
그러나 그중 몇 개의 조약돌은
물 밖으로 솟아올라 흐름을 거스르네.
세찬 리듬을 끊으며 내뱉는 글자 몇 개
그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겠죠.
그토록 자제하려 애써도
어느새 평온함을 딛고 빠져나와
세찬 물살을 가르는 저 돌들이
당신 가슴에 억지로 가라앉혀둔 말이었겠죠.
당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심장 속에 두근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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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마음 바닥에 가라앉혀 조용해진 돌들이 있다. 돌은 의지로 눌러놓은 침묵이 아니라, 그것대로 사연을 간직한 채 함묵하면서, 그냥 거기 있다. 그중 몇 개의 돌은 세찬 물굽이에 거슬릴수록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새겨 물살과 마주선다. 편지는 세찬 흐름을 가르는 돌처럼 밖으로 드러낸 견딜 수 없는 전언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심장 속 두근거림은 절절한 글자가 되어 그대에게 해독되기를 기다린다.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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