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연길 7’-조성래(1959~ )
연길 西市場(서시장) 한쪽
버드나무 그늘에 빈 수레 세워놓고
노역의 길에 지쳐 쉬고 있는
저 당나귀,
추레하게 서서 바보임금처럼 귀만 큰
저 천덕꾸러기,
시장 바닥
빈 지게 받쳐놓고
할 일 없이 나앉아 담배나 피우는
늙은 날품팔이 지게꾼처럼
목덜미 잔털 모지라진 저 등신,
주인 채찍 맞으며
고단하게 짐수레 끌고
살아왔을 거다, 비 오나 눈이 오나
평지 오르막길 가리지 않고 주인
가자는 대로 이끌려
종처럼 살아왔을 거다
새경도 없이, 저 聖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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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기행시, 귀한 시도이다. 어떤 현실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 ‘들여다보기’의 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들여다보기’에서 자각을 얻고, 또는 뜻밖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 시에서 당나귀는 서시장의 당나귀이기도 하면서 삶이라는 고단한 인생의 수레를 끄는 ‘나’이기도 하다. 당나귀가 성자라는 인식은 자신의 삶의 성자화(聖者化)로 바뀐다. 잠시 성자가 되는 당신. 시는 이렇게 우리를 고무시킬 수 있다. 감정의 이입(移入)과 전이(轉移)는 카타르시스라는 선물꾸러미를 당신에게 내밀 것이다. 삶의 길에 가끔 택배로 부쳐져 오는. <강은교·시인>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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