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 성미정 (1967 ~ )
곰국을 끓이다 보면 더 이상 우려낼 게 없을 때
맑은 물이 우러나온다 그걸 보면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뽀얀 국물 다 우려내야 나오는
마시면 속이 개운해지는 저 눈물이
진짜 진주라는 생각이 든다
뼈에 숭숭 뚫린 구멍은
진주가 박혀있는 자리라는 생각도
짠맛도 단맛도 나지 않고
시고 떫지도 않은 물 같은 저 눈물을 보면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
뭔가 시원하게 울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뽀얗게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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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이렇게 재미있다. 곰국 끓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서 이런 그림 하나를 상큼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자동화된 우리의 혀에 그 ‘낯익었으나 낯설게 된’ 시의 국물을 붓는다. 우리의 혀는 갸우뚱거린다. 그 익히 잘 아는 국물에서 무슨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바로 눈물의 향기다. 순간 곰국을 우려내는 일은 바로 눈물을 우려내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 눈물은 보통 눈물이 아니다. ‘뼛속’을 흐르는 눈물이다. 뼈에서 ‘우러나온’ 눈물은 부엌에 가득 차고, 거실에 가득 차고, 이윽고 현관문을 지나서 아스팔트 길 위로, 모든 길 위로 줄줄 흐른다. 눈물이 온 골목마다, 한길마다, 지하철 칸칸이 가득 차서 출렁거린다. 눈물을 거둘 날을 기다리는 눈물이 되어. <강은교·시인>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 성미정 (196.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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