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 - 황인숙(1958∼ )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종일토록 시내를 건넙니다
유리창 위의 달팽이 한 마리
종일토록 시내를 건넙니다
달팽이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또는 달팽이가 뛰어가는 모습을 상상하셔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느린 달팽이가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이죠. 아마 우리가 걷는 모습도 이 달팽이와 닮지 않았을까요? 이 시는 또 건너갑니다, 라는 동사를 계속 사용함으로써 끊임없이 걸어가는 걸음의 모습, 그리고 우리 삶의 끊임없는 경주의 광활함을 은유합니다. 묘하게 시 전체를 그 음이 울리지 않는지요? 그리고 ‘유리창 위’라는 은유가 주는 또 하나의 의미 또는 메시지, 우리가 걷는 길도 유리창같이 ‘저쪽’이 투명하게 보이나 이를 수는 없는, 슬픈 곳이라는 메시지의 깨달음. 그 ‘저쪽’이 어디냐고요? 상상해 봅시다. 시는 상상을 선물합니다. 상상은 시의 소포이며 또한 신의 소포입니다. 뜻밖의 소포를 받은 기분, 어떤지요?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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