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 다니카와 슌타로(1931~ ) / 김응교 번역
나는 알고 있다
뭔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나는 있다
여기에 있다
잠자고 있어도 나는 있다
멍하니 있어도 나는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나는 있다 어디엔가
나무는 서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고기는 헤엄치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놀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살아 ‘있다’
누군가 어디엔가 있다 하니 좋네
가령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있는 거다 있어주는 거다
라고 생각하기만 해도 즐거워져
내가 여기에 없다면? 당신이 이 지구에 없다면? 내 아이가 여기에 없다면? 없다는 세상은 끔찍하고 아찔하다. 다행히 나는 아직은 있다. 이 우주에서 이 지구에서 잠자고 있는 나, 가만히 있는 나, 한 그루 나무처럼 한 마리 물고기처럼.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내 두 다리가 움직여 걸어간다. 발자국도 만들면서 그림자도 데리고 다니면서 나는 이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다. 당신도 마찬가지, 당신이 어딘가에 있기만 하다면, 있어 줘서 좋다. 살아 있기만 하면 좋다. 그걸 잊고 우리는 늘 뭔가를 알아야만 하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랬지? 갑자기 묻게 된다.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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