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 김기택(1957~)
팔과 다리란 무엇인가
왜 살가죽을 뚫고 몸에서 돋아나는가
나는 안다 팔다리 달린 몸들을
그 몸들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그 끓어오르는 몸 속에
얼마나 많은 울음이 들어 있는가를
갓난 것들은 태어나자마자
몸에서 울음부터 꺼내야만 하고
평생 동안 부지런히 지껄여
말들을 뱉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쉬지 않고 난폭한 힘을 배설하지 않는다면
끝내는 자신의 열기에 못 견뎌 뇌는 녹고
심장은 타고야 말 것이다
몸 속의 열기가 살가죽 밀고 터져나오지 않도록
살가죽 터진 자리마다 거추장스런 팔다리가 돋아나지 않도록
그리하여 온몸에 차가운 피가 흐르도록
모든 힘을 독으로 만들어야 한다
얼음처럼 차고 빛나야만 맑아지는 독
그 푸른 힘으로 끓어오르는 열기를 잠재워야 한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가늘고 긴 선 하나만 몸에 남게 될 것이다
가벼워라 아아 편안하여라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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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피와 울음과 분노를 뱉지 않으려면, 그것들이 살가죽을 밀고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얼마나 악전고투를 해야 하나, 시인이 살고 있는 세계의 난폭함이 어떠했는지 역으로 짐작하게도 하지만, 이 시는 그 난폭함을 드러내는 대신 그것을 차갑고 빛나는 독으로 빚어 맞대응하는 내적 에너지를 보인다. 우리 땅에는 이렇게 인고를 굴려 몇 캐럿의 다이아몬드로 빚는 놀라운 시가 있다.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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