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식사 - 이근화(1976~ )
나는 나인 듯
어느 맑게 개인 날에
시금치를 삶고
북어를 찢는다
골목마다 장미가 피어나고
오후에는 차를 마신다
어느 맑은 날에는,
낮잠을 자고
어김없이 목욕을 하고
나는 또 나인 듯이
외출을 한다
나는 나에게 다 이른 것처럼
클랙슨을 울리고
정말 나인 것처럼
상스럽게 중얼거린다
국부적으로 내리는 비,
어느 날엔가 나는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빗방울은 말없이 떨어진다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손등을 어깨를 훔쳐본다
나는 나에게 이르러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내가 갈 수 없는 곳들의 지명을
단숨에 불러 본다
내가 나에게 이른 것처럼
마치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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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먼저 돼야지 점수만 좋으면 뭐해,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우리 애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나인가, 아닌가? 나는 나인 것처럼 인사도 하고, 내가 아닌 것처럼 머리도 빗고 외출도 하고, 미안해, 안 그럴게, 그런 말도 하는데 묻고 싶다. 이게 진짜 나인지?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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