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 아이가 - 최승자(1952~ )
왜 나는 늘 ‘한 아이가 뛰어가고 있다’라고
낙서하는 것일까 왜 한 아이는 뛰어가고
있는 것일까 왜 나는 늘 그 구절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그건 눈 뜨고 꾸는 꿈은 아닐까 그러나 자면서 꾸는
꿈들은 어떤가 그 많은 이상한 꿈들 중에서도
엉성하고 밋밋한 스케치 같은 꿈들,
실루엣에 소리만 나는 꿈들,
인물도 풍경도 없이 사각사각 연필로만 씌어지는 꿈들
한 사물에 소리들만 있는 꿈들
정지되어 있는 화면에 단지 몇 커트의 사진들만
움직이지 않고 들어 있는 꿈들,
빛도 음영도 없이 물 묻은, 아직 스케치조차 못 되는
인물 풍경들로 이루어진 꿈들
그것들은 다 뭐란 말인가
(꿈들에 젖은 머리통이나 흔들어 보자)
-----------------------------------------------------------------------------------------------
아직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들, 그러나 존재하는 것들, 소중하고 아름답게 거기 있는 것들, 뭐라고 말해버리면 틀리게 되는 것들, 많은 이가 그런 것들은 없는 것으로 친다. 사람들은 좌 아니면 우, 진보 아니면 보수, 흑 아니면 백, 그렇게 억지 자리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구겨 넣기를 좋아한다. 욕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비켜서서, 병원에서 요양 중인 한 시인의 눈에 비친 저 아이, 세상의 한 아이가 저기 뛰어가고 있는데, 막 솟는 새싹처럼 선명하고 순결하고 아름답다. <최정례·시인>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봉근린공원 - 권혁웅(1967~ ) (0) | 2012.02.17 |
---|---|
그림자의 고별 - 루쉰(1881~1936)/유세종 번역 (0) | 2012.02.15 |
고독한 사냥꾼 - 천양희(1942~ ) (0) | 2012.02.13 |
지붕 위의 식사 - 이근화(1976~ ) (0) | 2012.02.11 |
지붕 위의 식사 - 이근화(1976~ ) (0) | 2012.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