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인 - 에밀리 디킨슨(1830~1886) / 장영희 번역
난 무명인입니다!
당신은요? 당신도 무명인이신가요?
그럼 우리 둘이 똑같네요! 쉿! 말하지 마세요.
쫓겨날 테니까 말이에요.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요란할까요, 개구리처럼 긴긴
유월 내내 찬양하는 늪을 향해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대는 것은.
------------------------------------------------------------------------------
이름 석 자가 전부이거나 이름도 지워지기 일쑤인 무명인이 어째서 유명인 되기를 끔찍해할까. 떵떵거리는 유명이란 것이 덧없는 욕망의 가건물 같은 것이라 여겨서인 듯하다. 이 무명인은 ‘이름 없음’이 인간의 본래 상태라고, 제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유명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 요란스러운 유명세를 덧없는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우리는 모두 진흙 세상에 발 담그고 사니까. 필요한 건 무명의 늪이 늘 유명에 대해 바라는 바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래서 유명인이 되고자 한다면 쉼 없이 제 이름을 개골거리기보다 제가 누구인지, 무엇을 꿈꾸는지,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말해야 한다는 것. 이름이란 알고 보면, 진흙탕에 일었다 지는 거품 같은 것이니까. <이영광·시인>
무명인 - 에밀리 디킨슨.txt
0.0MB
무명인.hwp
0.02MB
무명인.jpg
0.0MB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시40-산책-정진규(1939~) (0) | 2012.08.06 |
---|---|
여름날의 독서-정희성(1945~) (0) | 2012.08.03 |
사과 없어요-김이듬(1968~) (0) | 2012.07.27 |
냄비-문성해(1963~) (0) | 2012.07.26 |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1957~ ) (0) | 2012.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