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독서-정희성(1945~)
파리 한 마리가 내 얼굴에 앉았다가 날아가 개똥 위에.
다시 앉는다 어쩌다 골라앉은자리가개똥 옆인가 싶은데
파리는 미안하다는 듯 손이 발이 되도록 비빈다 미안할
게 뭐 있는가 생각하며 신문을 보니 전아무개라는 사람
은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진압을 했을 뿐이라 하고
노아무개는 기업들이 성금으로 준 돈을 받아서 좋은데
썼을 뿐이라고 법정 진술을 했다한다. 입이 찢어지게 하
품을 한바탕 하고 나는 신문을 접어 두고 차라리 산성일
기를 읽었다
......
--------------------------------------------------------------------------------
똥을 탐하는 것이 제 본성임에도, 개똥에 더럽혀진 몸으로 사람 얼굴을 범한 걸 파리가 미안해한다고, 시의 인물은 생각한다. 괜찮다고 말하며, 그는 사실 파리만도 못해 보이는 누군가의 후안무치를 문제 삼는다. 이 시는 은은히 사납다. 입이 찢어질 듯한 하품 속에는 가당찮은 현실을 같잖게 여겨 돌아앉는 노기가 들어 있다. 올림픽 중계에 밤잠을 설치다 보면 누구나 심장에 민족주의라는 모터가 돌고 있다고 느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좀 낡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란이 곧 역사인 나라에 나서 살지만, 같은 민족을 제일로 괴롭히는 건 결국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괴롭힘이 심한 나라는 약한 나라일 수밖에 없기에 외침도 잦았을 것이다. 늘 욕이나 먹던 임금 인조, 마음만은 왕 노릇 잘 하고 싶었구나. 아무개 두 분과는 달랐구나. <이영광·시인>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물왕국 중독증-이면우(1951~) (0) | 2012.08.07 |
---|---|
몸시40-산책-정진규(1939~) (0) | 2012.08.06 |
무명인-에밀리 디킨슨(1830~1886)/장경희 번역 (0) | 2012.08.02 |
사과 없어요-김이듬(1968~) (0) | 2012.07.27 |
냄비-문성해(1963~) (0) | 2012.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