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여름날의 독서-정희성(1945~)

~Wonderful World 2012. 8. 3. 22:07

여름날의 독서-정희성(1945~)

 

파리 한 마리가 내 얼굴에 앉았다가  날아가 개똥 위에. 

다시 앉는다 어쩌다 골라앉은자리가개똥 옆인가 싶은데

파리는 미안하다는 듯 손이 발이 되도록 비빈다  미안할

게 뭐 있는가 생각하며 신문을 보니 전아무개라는 사람

은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진압을 했을 뿐이라 하고

노아무개는 기업들이 성금으로 준 돈을  받아서 좋은데 

썼을 뿐이라고 법정 진술을 했다한다.  입이 찢어지게 하

품을 한바탕 하고  나는 신문을 접어 두고 차라리 산성일

기를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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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탐하는 것이 제 본성임에도, 개똥에 더럽혀진 몸으로 사람 얼굴을 범한 걸 파리가 미안해한다고, 시의 인물은 생각한다. 괜찮다고 말하며, 그는 사실 파리만도 못해 보이는 누군가의 후안무치를 문제 삼는다. 이 시는 은은히 사납다. 입이 찢어질 듯한 하품 속에는 가당찮은 현실을 같잖게 여겨 돌아앉는 노기가 들어 있다. 올림픽 중계에 밤잠을 설치다 보면 누구나 심장에 민족주의라는 모터가 돌고 있다고 느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좀 낡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란이 곧 역사인 나라에 나서 살지만, 같은 민족을 제일로 괴롭히는 건 결국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괴롭힘이 심한 나라는 약한 나라일 수밖에 없기에 외침도 잦았을 것이다. 늘 욕이나 먹던 임금 인조, 마음만은 왕 노릇 잘 하고 싶었구나. 아무개 두 분과는 달랐구나. <이영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