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 함민복(1962~ )
물 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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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객이 떠난 바닷가에서 건너다 보이는 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쓸쓸할까? 허전할까? 아니면, 갯바위 틈에 버리고 간 쓰레기 때문에 뼈가 결릴까? 여기 전해온 한 소식이 있다. 십수 년 전 마니산에 올랐다가 그 풍광에 반해 강화에 들어갔다더니, 섬을 바라보며 거닐다가 문득 섬이 되어 버렸나. 하이데거가 ‘존재’라고 써놓고는 그 말로는 존재 그 자체를 표시할 수가 없어서 그 글자 위에 ×를 치고, 그러나 또 그렇게 쓰지 않을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 존재 ’라고 썼다더니, 시인이 본 섬이 꼭 그랬나? 바다가 되어버린 섬, 그러나 또한 거기 그대로 섬이기도 해서 이렇게 썼나. 한순간, 사방팔방이 툭 트여서, 아예 길이랄 것을 따로 찾을 일이 없었나. 이 가는 여름에, 섬이 우리 뒤통수에 보내는 한 소식이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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