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산길에서-김시습(1435~1493)

~Wonderful World 2012. 8. 13. 19:13

 

중년의 냄새가 물씬 난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의 한가운데 서 있다. 삶의 무게를 걸머지고, 막막하다. 임금을 놀라게 할 천재를 타고났으나 조실부모, 선비로서 승인할 수 없는 격변을 만났다. 마음은 불가에 두었으나 행실은 유가에 있었다고도 하고, 그 자취는 절집에 있었으나 선비의 풍모였다고도 하는데, 끝없이 떠돈 그의 생애가 이 한 편에 담겼다. 단란한 망중한(忙中閑)의 꿈이 그에게라고 없었을까. 고즈넉한 봄날의 풍경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살고 싶은 날이 그에게라고 없었을까. 험난한 산길을 헤쳐와서 우연히 맞닥뜨린 산촌의 정경을 통해 늘 마음 한쪽에 젖혀두어야 했을, 그러나 뿌리 깊은 꿈을 읽을 수 있다. 늘 길 위에 있었던 그가 마른 등나무 하나 등에 걸치고 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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