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나의 방랑생활-아르튀르 랭보(1854~1891),김현 옮김

~Wonderful World 2012. 8. 23. 16:25

나의 방랑생활  -  아르튀르 랭보(1854~1891), 김현 옮김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ㅡ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 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내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ㅡ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9월 저녁나절에, 이슬방울을

원기 돋우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에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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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은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독자들과 편한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될 때, 그 마음속에 그려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영락없이 이 시 속에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해어져서 구멍이 숭숭 뚫린 데다 너무 크거나 작아서 몸에 잘 맞지 않는, 관념 속에서나 옷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옷을 걸치고 떠도는 시인. 지상(地上)이 아닌 별 위를 거닐고, 들꽃 점점이 흩어진 언덕에서 리라의 음률에 맞추어 시를 읊는 그런 시인.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들은 들꽃이나 별똥별과 같아서 그대로 꽃다발이 되고 별자리가 되는. 어쨌거나, 랭보나 베를렌과 같은 시인들이 예이츠나 워즈워스와 더불어 우리에게 시인의 한 전범이 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시인들이 근대시의 형성기로부터 우리 시사(詩史)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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