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 - 장석남(1965~ )
생각 끝에,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간다
언 내(川) 건너며 듣는
얼음 부서지는 소리들
새 시(詩) 같은,
어깨에 한짐 가져봄직하여
다 잊고 골짜기에서 한철
얼어서 남직도 하여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오는 이 또 있을까?
꽝꽝 언 시 한짐 지고
기다리는 마음
생각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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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적적하다. 이 적적함이 참 낙낙하다. 못줄을 잡을 때는 낙낙하게 잡아야 한다는 말을 어려서 들었다. 할머니였던가, 당숙모였던가. 헐겁지도 팽팽하지도 않게, 그저 낙낙하게. 닿을 듯 가서 닿을 듯 간신히, 그 마음에 가 번져서, 그 마음이 다시 번져오는데, 딱히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장석남 시에서 이런 것을 자주 느낀다. 시가 아니고는 달리 말할 수 없는 것을 그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간다”. 겨울 골짜기, 그 결빙의 한기, 바위 듬성한 계곡, 얼음 밑으로 내리는 물소리, 듣는 물방울…. 구부정하게 어깨가 굽어서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는 한 사람.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오는 이 또 있을까?” 그는 그가 시인인 것을 알고, 그렇게 시를 생각하며 간다. 시를 기다려, 언 골짜기에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가는 사람. 천생 시인이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동지(冬至) - 장석남(1965~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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