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끌고 가는 - 김주대(1965~ )
사내가 턱에 걸린 휠체어를 밀어주자
휠체어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덜컥, 웃는다
휠체어를 밀어준다는 것이 그만
여자의 이마 안에 감춰진 미소를 민 모양이다
휠체어에 앉은 여자의
안면 쪽으로 밀려나온 미소가 들어가지 않는다
미소가 앞장서 간다
휠체어를 미는 사내가
여자의 미소에 웃으며 끌려간다
미소가 웃음을 끌고 가는 언덕길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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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에 젖은 날 들판에 나가 보는 자그만 들꽃 같은 미소다. 그 곁에 마주 피어나는, 더불어 거기 있는 꽃 같은 웃음이다. 간신히, 우리는 거기 기대 위안을 얻는다. 그것이 모든 시름을 다 덮을 수는 없으나, 이 ‘간신히’만으로도 우리는 그것을 가슴에 품고 지긋이 견딘다. 비바람 속에 힘들게 피었다가는 간신히 한 번 미소 짓고 스러지는 것이 꽃인데, 그런 까닭에 그 꽃이 소중한 것을 아는 나이가 관찰자에게 찾아와버린 것일까? 그래서 작은 들꽃처럼 환하게 피었다가 지는 한때를, 거기에 간신히 기댄 우리네 삶이 들여다보이는 이 한때를 그 ‘언덕길 오후’로 인화해 둔 것일까? 웃음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유리잔에 찰랑이는 물을 들고 가듯 ‘끌고 가는’ 것일까? 휠체어를 밀 듯이.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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