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틸드 -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황현산 번역

아네모네와 매발톱꽃이
정원에 돋아 있고
사랑과 멸시 사이에
우울이 잠든다
우리 그림자도 거기 들어와
밤이 되면 사라지리라
그림자를 어둡게 하는 태양도
함께 사라지리라
흐르는 물의 여신들이
머리칼을 흘려 보낸다
지나가라 너는 쫓아야 할 것이니
그대가 원하는 저 아름다운 그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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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일까 한번 묻지 않은 젊은 시절이 있을까? 세상의 모든 사랑은 거개가 양면적이다. 너무 좋아해 경멸한다는 말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러나 사랑에 깊은 슬픔이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사랑이 위험을 동반하는 것은 사랑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우연의 산물이기에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지속될 방법을 궁리한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낙관에 무릎을 꿇고 굴복하기도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세월을 견뎌낼 힘을 창안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불꽃이 자주 흩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사라진 후의 공허함이 운명처럼 찾아든다. 기다림이 병이 될 때, 사랑이라는 말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감당하기 어려운 제 감정을 타인에게 띄워, 오로지 그것만을 보고자 했던가. 차오르는 내 감정의 무덤 안으로 타인을 완전히 침몰시킬 때, 사랑은 환상이나 욕망과 쉽사리 하나가 된다. 헛것을 붙잡고서 드디어 찾았다고 외치는 고질적이고 이기적인 병,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로 그렇게나 쉽사리 불러내곤 한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매일 밤이면 까닭 없이 차오르는 뜨거운 덩어리에게 말한다. 제발 놔 달라고, 그만 얼씬대고, 어서 가라고. [조재룡, 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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