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한 만가 -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1929~ )
여기 사과가 놓여 있었고
여기 식탁이 있었다
저것은 집이었고
저기는 도시였다
여기 대륙이 잠들어 있구나.
저기 저 사과가
지구란다
아름다운 별이지
저 별에는 사과가 있었고
사과를 먹는 사람들이 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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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한국산을 세계 제일로 친다. 과장이 아니라, 외국에서 사과를 사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과는 성경에 나오는 과일이며, 지구와 인류 문명의 상징이고, 애플의 상표이기도 하다.
첫눈에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이 시에서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외계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적막한 형상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구라는 아름다운 녹색별에는 사과가 있었고 사과를 먹는 인간이라는 족속이 살았다. 동사의 시제가 모두 과거형이다. 살아 움직이는 현재형은 없다. 어쩌면 핵전쟁으로 파멸한 지구의 미래상이 이렇지 않을까.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이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버리고, 기후변화로 모두 사멸한 다음,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탈출한 몇몇 생존자가 외계인이 되어, 자기 후손들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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