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 이시영(1949~ )

가난한 사람들이 머리에 가득 쌓인 눈발을 털며 오르는
지하철 2호선은 젖은 어깨들로 늘 붐비다
사당 낙성대 봉천 신림 신대방 대림 신도림 문래
다시 한 바퀴 내선순환을 돌아
사당 낙성대 봉천 신림
가난한 사람들이 식식거리며 콧김을 뿜으며 내리는
지하철 2호선은 더운 발자국들로 늘 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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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십 년 동안 무수히 지하철을 타고 다녔지만, 순환선 2호선을 타고 서울의 지상과 지하를 한 바퀴 돌아본 적은 없다. 그래도 2호선의 승객들이 강남과 강북, 동부와 서부 구간에 따라 특색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강남 구간에서는 교대역·삼성역에서 승하차 또는 환승이 특히 어렵고, 강서 구간에서는 신도림역이 그런 것 같다.
얼마 전 서초역에서 신촌 방향 2호선을 탔다. 몸을 가누기 힘들고 숨이 막힐 정도로 승객이 많았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에 무거운 짐을 들고 앉아있던 중년의 아줌마가 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꼬박 열한 정거장을 서 있다가 문래역에서 내렸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뒷모습을 나는 거기서 보았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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