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 - 김기택(1957~ )

나뭇가지들이 갈라진다
몸통에서 올라오는 살을 찢으며 갈라진다
갈라진 자리에서 구불구불 기어 나오며 갈라진다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진다
나무 위에 자라는 또 다른 나무처럼 갈라진다
팔다리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갈라져 있었다는 듯 갈라진다
태곳적부터 갈라져 있는 길을
거역할 수 없도록 제 몸에 깊이 새겨져 있는 길을
헤아릴 수도 없이 가 보아서 눈 감고도 알 수 있는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듯이 갈라진다
제 몸통으로 빠져 나가는 수많은 구멍들이
다 제 길이라는 듯 갈라진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커다란 나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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