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커다란 나무 - 김기택(1957~ )

~Wonderful World 2014. 8. 12. 10:18

커다란 나무 - 김기택(1957~ )

 

 

나뭇가지들이 갈라진다

몸통에서 올라오는 살을 찢으며 갈라진다

갈라진 자리에서 구불구불 기어 나오며 갈라진다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진다

나무 위에 자라는 또 다른 나무처럼 갈라진다

팔다리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갈라져 있었다는 듯 갈라진다

태곳적부터 갈라져 있는 길을

거역할 수 없도록 제 몸에 깊이 새겨져 있는 길을

헤아릴 수도 없이 가 보아서 눈 감고도 알 수 있는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듯이 갈라진다

제 몸통으로 빠져 나가는 수많은 구멍들이

다 제 길이라는 듯 갈라진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커다란 나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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