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어느 친구 - 구 상(1919~2004)

~Wonderful World 2014. 8. 14. 21:05

어느 친구 - 구 상(1919~2004)

 

 

주일(일요일)마다 명동 성당엘 가면

초입 언덕에 구걸상자를 앞에 놓고

뇌성마비로 전신이 비틀린

그 친구가 앉아 있다. (…)

나하고는 그 언제부터인지

아주 낯익고 친숙해져서

내가 언덕을 오를 양이면

멀리서부터 혀꼬부라진 소리를

지르곤 한다. (…)

나는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 기도한다.

하느님! 당신의 영원한 동산에서는

저와 내가 허물을 벗은 털벌레처럼

나비가 되어 함께 날게 하소서!

주변에 장애인 가족을 둔 친구들이 더러 있어서, 그 아픔과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짐작은 한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시라고 하느님이나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지 못해도, 내 나름대로 마음 속 염원을 아끼지는 않는다.

 구상 시인을 생전에 가까이서 만나 본 적은 드물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틈틈이 읽었고, 그의 인품이 중후하고 고결하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사랑을 베푼다는 소문도 많이 들었다. 여기에 나오는 기도 또한 구체적이고 절실하지 않은가. 아직 생존했다면, 교황의 한국 방문을 누구보다도 기뻐했을 시인이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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