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세계 - 김행숙(1970~ )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김행숙의 화법은 낯설고 모호하다. 발이 녹고 무릎이 없어지는 세계는 어떤 세계를 말하는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라는 단서에 기댄다면, 그것은 우리를 범속한 평면에 가두는 세계다. 그 평면을 깨고 도약하는 “검은 돌고래”는 무의식 안에 숨은 열망을 보여주는 것일까?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일지라도 솟구쳐 오르는 다정함은 키우고 장려해야 할 인류의 덕목이다. 그런 덕목들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당신에게] 한없이 다가”가야 한다. 다정함이야말로 삶에 의미의 빛을 더 비추고 우리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석주·시인>
다정함의 세계 - 김행숙(1970~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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