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목계(木鷄) - 권혁재(1965~ )

~Wonderful World 2016. 4. 18. 00:36

목계(木鷄) - 권혁재(1965~ )

단 한 번의 울음으로

당신 심장을 멎게 할 것 같아

횃대에 오르지 않는 닭

바람이 든 나무의 기억 때문에

펴지지 않는 날개가

자꾸만 푸드득거린다

독수리처럼 홰를 치고 싶은 본능이

하늘을 향할 때마다

울 수 없는 언어들이 목젖에 잠긴다

죽도록 날아가는 빈 날갯짓

당신에게 가는 길이 있다면

부리에 피가 나도록 싸우는

눈이 먼 투계가 되어도 좋아

몸 속 가득 당신이라는 호칭을


결결이 쌓아 놓은 채

(…)




장자(莊子)의 “목계(木鷄)”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제압하는 최고의 ‘싸움닭’이라면, 시인의 목계는 바로 그 나무의 감옥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는 닭이다. 날고 싶어도,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언어들”이 나무 안에 갇혀 있다. “단 한 번의 울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을 멎게 할까봐 닭은 홰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에게 갈 길이 없다. 당신의 이름만 몸 속 가득 쌓아 놓는다. 다만 당신의 이름만 몸 속 가득 쌓아 놓을 뿐.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목계(木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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