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뼈
-김명인(1946~)

폐광 되자 광산은 빚만 남겨서
어머니, 밥집 닫으시고 다시 허구한 날
막내 업고 장터 떠도시었다.
가도 끝없는 날들 찬 물결 무심히
구겨지는 모랫벌 따라가면
어디서 밀려온 오징어 뼈 몇 개.
좋던 시절의 노을은 아름다웠지만 석탄 캐던
장정들도 떠나가버려
종종치던 물총새 울음에 홀로 묻혀가던 그해
늦가을까진 형님조차 소식이 없고
웬 배고픔에도 기대 그리움도 나 혼자 하릴없어서
그 뼈 부숴 흰 가루로 바다에 뿌리면
돌아와 물가장마다 뿌옇게
진종일 붐비던 파도, 안개여.
막막한 폐광이요 막막한 가난이다. 밥집마저 닫으신 어머니의 가난과 ‘나’의 배고픔은 어찌하리. 모랫벌에 떠밀려온 오징어 뼈 몇 개. 배고파 죽겠는데 오징어 몇 마리도 아니고 오징어 뼈 몇 개는 뭔가. 혹시 어느 그리운 사람이 그 뼈로 돌아왔는가. 너무 적막해서 물총새 울음만 들리고 오징어 흰 뼛가루가 파도에 날리는 시간. 막막함을 막막하게 그린 박수근의 그림 같다.
<김승희·시인·서강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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