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이마-신미나(1978~)

~Wonderful World 2017. 9. 9. 19:40

이마
-신미나(1978~)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젊은 시인인데 시의 목소리는 이 세상을 이미 한 바퀴 돌아온 사람처럼 제대로 익었다. 여기서 시인은 방과 부엌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던 시절을 호출한다. 장판이 깔린 방은 단칸방일 것이고 부엌에는 연탄아궁이가 있을 것 같다.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병을 얻은 것은 아마도 사랑이 만든 서러움 때문일 것이다. 한 사흘 앓아눕는 것으로 마음의 병을 이기고자 하는 태도는 이미 치유의 길을 훤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손등으로 물금을 잰다는 말은 얼마나 아름답고 가지런한가! 그는 끙, 하고 일어나 밥을 안치고는 가까스로 이마에 손을 얹었을 것이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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