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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어야 할 이유 - 나희덕

~Wonderful World 2018. 1. 19. 12:27
살아 있어야 할 이유 - 나희덕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 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나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 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