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어떤 나무의 말 - 나희덕(1966~)

~Wonderful World 2018. 2. 2. 13:33
어떤 나무의 말  
-나희덕(1966~ )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 
 
 
이 나무의 가지는 야윌 대로 야위어 공중을 더 가르고 나갈 기운이 없어 보인다. 놓쳐선 안 될 무언가를 놓쳐버린 걸까. 그는 봄날의 푸른 잎사귀를 원치 않으며, 생명의 황홀을 어두운 몸에 가두어 삶을 한 번으로 그치려 한다. 나무 병원에 입원한 나무 같은 이 사람에게 쉽게 위로를 건네선 안 되겠지. 고통이 그의 몸에서 천천히 흘러나가는 동안 그 곁에 다른 나무로 가만히 서 있는 것 말고는. 우리는 삶의 의사가 아니라 같은 환자일 뿐이므로.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