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무의 말
-나희덕(1966~ )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
이 나무의 가지는 야윌 대로 야위어 공중을 더 가르고 나갈 기운이 없어 보인다. 놓쳐선 안 될 무언가를 놓쳐버린 걸까. 그는 봄날의 푸른 잎사귀를 원치 않으며, 생명의 황홀을 어두운 몸에 가두어 삶을 한 번으로 그치려 한다. 나무 병원에 입원한 나무 같은 이 사람에게 쉽게 위로를 건네선 안 되겠지. 고통이 그의 몸에서 천천히 흘러나가는 동안 그 곁에 다른 나무로 가만히 서 있는 것 말고는. 우리는 삶의 의사가 아니라 같은 환자일 뿐이므로.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나희덕(1966~ )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
이 나무의 가지는 야윌 대로 야위어 공중을 더 가르고 나갈 기운이 없어 보인다. 놓쳐선 안 될 무언가를 놓쳐버린 걸까. 그는 봄날의 푸른 잎사귀를 원치 않으며, 생명의 황홀을 어두운 몸에 가두어 삶을 한 번으로 그치려 한다. 나무 병원에 입원한 나무 같은 이 사람에게 쉽게 위로를 건네선 안 되겠지. 고통이 그의 몸에서 천천히 흘러나가는 동안 그 곁에 다른 나무로 가만히 서 있는 것 말고는. 우리는 삶의 의사가 아니라 같은 환자일 뿐이므로.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김종삼(1921~1984 ) (0) | 2018.02.07 |
---|---|
손을 부비며-세르게이 예세닌 (0) | 2018.02.07 |
성북역-(1961~) (0) | 2018.01.26 |
가슴-김승희(1952~) (0) | 2018.01.25 |
햇살에게 - 정호슴(1950~) (0) | 2018.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