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그리고 햇빛-정희성(1945~ ) 

~Wonderful World 2018. 4. 10. 22:25
그리고 햇빛        
정희성(1945~ )


바닷가에 서서
수평선을 보느니
물새 몇 마리 끼룩대며 날아간
어두운 하늘 저 끝에
붉은 해가 솟는다
이상도 해라
해가 해로 보이지 않고
구멍으로 보이느니
저 세상 어드메서
새들은 찬란한 빛무리가 되어 
이승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일찍 일어난 물새들이 날아간 새벽 바다에 해가 솟는다. 역시나 일찍 일어난 시인이 그 빛 덩이를 보고 있다. 둥근 해를 빛의 구멍이라 여긴 착시의 순간은 찬란하다. 아마 새들은 미리 알고 어둠을 헤치며 마중 갔던 것이리라. 그리고는 그 작은 끼룩거림으로 자랑스레 해를 인도해 오고 있다. 어머니인 해가 저희들을 낳는 줄 모르고. 매일 한 번씩 새로 낳아주는 줄도 모르고.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