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들, 시인들

애틋-민왕기

~Wonderful World 2018. 11. 5. 08:28

애틋

  민왕기



  

  이름을 불러주면 글썽이는 뼈입니다


  교복바지 위로 살짝 드러난 저 아름다운 뼈를 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는 일은 복숭아뼈를 드러내고 아련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 집 나무 아래를 오래 서성이던 저녁들이 모이고

  나와 그가 감춰뒀던 앳된 뼈도 거기 작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복숭아뼈 여덞 개가 키득거려 노을도 출렁거리고 있었을겁니다


  의자에 발목을 부딪치면 찡하게 아팠던 것이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


  몸을 둥글게 말아 오랜만에 복숭아 뼈를 만져보면

  소년이 소년인 줄, 소녀가 소녀인 줄 모르던 시간이 아직 남아있을 겁니다


  손에서 가장 먼 뼈, 가장 작고 예뻤던 뼈가 복숭아뼈라는 걸, 글썽이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나는 오늘 그 뼈가 애틋이었다고 속삭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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