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논 거울

~Wonderful World 2019. 2. 16. 13:29
논 거울         
-박성우(1971~ )
 
시아침 1/19

시아침 1/19

고향 마을에 들어 내가 뛰어다니던 논두렁을 바라보니 논두렁 물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내의 몸에서 나온 소년이 논두렁을 따라 달려나갔다 뛰어가던 소년이 잠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논두렁 멀리 멀어져간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내는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난 나와 논두렁은 서로를 서먹하게 바라본다. 그러다간 곧 알아본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소년의 모습을 하고 논두렁길을 달려간다. 뭐 해? 하고 돌아본다. 아름답고 뭉클한 비유다. 그러나 나는 따라가지 못한다. 갈 수 없는 곳이 새로 생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있음이다. 돌아서는 내 마음속에는 당장은 말할 수 없는 어떤 기약이 생겼을 테니까. 지금은 살기 위해 또 고향을 떠나야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와 논두렁을 달려간 그 소년을 만나야 할 테니까.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논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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