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개미핥기-황인숙(1958~ )

~Wonderful World 2019. 3. 29. 11:01

개미핥기          
-황인숙(1958~ )  
    

시아침 12/28


풀고 싶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답이 두렵기에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끓는 문제들
개미에 시달리지 않고
쫓기지 않고, 개미를 미워하지 않고
그러기 위해 나는 날름날름
개미를 삼킨다
위장(胃腸)의 일로 넘겨버린다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여전히 끓는 개미 떼
나는 또 다시 날름날름
개미는 나의 양식
입속이고 뱃속이고 따끔따끔 뜨끔뜨끔  
   
     
사람에게,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세상 사이에 온갖 문제들이 있다. 풀어버리면 후련해질 것 같지만 무슨 다른 곤란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건 오답일지도 모른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문제들이 개미 떼처럼 붐빌 때면 ‘개미핥기’처럼 그냥 후룩 삼켜버리자! 하지만 그건 늘 미봉책. 튼튼한 위장으로 개미들을 부수어 소화시키는 개미핥기와 달리 시인은 뱃속을 꿍꿍 앓는다. 하지만 이게 바로 해결책. 이 평생의 속앓이가 이 시인의 팔자고 수행이고 행복이라 본다. 문제들은 뭐 어떻게든 천천히, 천천히 소화될 테니까. 몸은 가난해도 마음의 ‘위장’ 하나는 튼튼하니까.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개미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