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 줄
-조정권(1949~2017)
(…)
나는 세 개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를 자연스럽게 잘라
ㄷ자형으로 엮어 일으켜 세워놓은 거대한 시비 앞으로
다가간다. 거친 화강암 표면에는 아무런 꽃장식이나 수식도 없이
시 한 줄커녕, 다만
조그맣게 새겨놓은
이름이 보였다.
Heinrich Heine
1797~1856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간명하게, 단 두 줄.
시인의 무덤에서 시인은 자신의 앞날을 예감한 것 같다. 열혈 하이네의 시비엔 꽃장식도 한 줄의 시도 없다. 그저 부끄러운 듯 이름과 생몰연도가 작게 파여 있다. 이것이 전부란 걸 그는 뼈에 새겼을 것이다. 나는 이분에게 시나 부축하다 가는 삶에 대해 더러 들은 적이 있다. 이분은 지난달에 그 예감의 시간 속으로 홀연 떠나갔다. 병고에 시달리던 몇 년간 그가 오직 시만 부둥켜안고 살던 걸 듣고 또 보았다. 시인은 시를 사랑했으나, 시는 시인을 더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 낱말만 더해 ‘단 두 줄’을 적고 싶다. “시인 조정권/ 1949~2017.”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단 두 줄
-조정권(1949~2017)

나는 세 개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를 자연스럽게 잘라
ㄷ자형으로 엮어 일으켜 세워놓은 거대한 시비 앞으로
다가간다. 거친 화강암 표면에는 아무런 꽃장식이나 수식도 없이
시 한 줄커녕, 다만
조그맣게 새겨놓은
이름이 보였다.
Heinrich Heine
1797~1856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간명하게, 단 두 줄.
시인의 무덤에서 시인은 자신의 앞날을 예감한 것 같다. 열혈 하이네의 시비엔 꽃장식도 한 줄의 시도 없다. 그저 부끄러운 듯 이름과 생몰연도가 작게 파여 있다. 이것이 전부란 걸 그는 뼈에 새겼을 것이다. 나는 이분에게 시나 부축하다 가는 삶에 대해 더러 들은 적이 있다. 이분은 지난달에 그 예감의 시간 속으로 홀연 떠나갔다. 병고에 시달리던 몇 년간 그가 오직 시만 부둥켜안고 살던 걸 듣고 또 보았다. 시인은 시를 사랑했으나, 시는 시인을 더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 낱말만 더해 ‘단 두 줄’을 적고 싶다. “시인 조정권/ 1949~2017.”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단 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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