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의 안쪽
-안현미(1972~)
마음을 고쳐먹을 요량으로 찾아갔던가, 개심사, 고쳐먹을 마음을 내 눈앞에 가져와 보라고 배롱나무는 일갈했던가, 개심사, 주저앉아버린 마음을 끝끝내 주섬주섬 챙겨서 돌아와야 했던가, 하여 벌벌벌 떨면서도 돌아와 약탕기를 씻었던가, 위독은 위독일 뿐 죽음은 아니기에 배롱나무 가지를 달여 삶 쪽으로 기운을 뻗쳤던가, 개심사, 하여 삶은 차도를 보였던가, 바야흐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을 지나 천우사화(天雨四花)로 열리고 싶은 마음이여, 개심사, 얼어붙은 강을, 마음을 기어이 부여잡고 안쪽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는 만삭의
속세의 일 때문에 주저앉은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 개심사에 갔나 보다. 그래도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나 보다. 죽음과도 같은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 그의 몸과 마음을 훑고 지나갔으리라. 개심사는 배롱나무가 유명하다고 한다. 이 나무는 표피가 유난히 매끈하다. 여름날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해서 백일홍으로 부르기도 한다. 화자는 꽃을 달고 서 있지 않은 겨울 배롱나무가 안쪽에서부터 부풀어 오르고 있음을 직감한다. 아픔을 견디면 언젠가는 만물이 생동하고 꽃들이 사방에 비 오듯 내리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세상을 한 바퀴 휘돌아 나온 자의 성찰이 느껴지는 시다. 그래서 산문시인 데도 묵중한 리듬이 느껴진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배롱나무의 안쪽
-안현미(1972~)

속세의 일 때문에 주저앉은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 개심사에 갔나 보다. 그래도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나 보다. 죽음과도 같은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 그의 몸과 마음을 훑고 지나갔으리라. 개심사는 배롱나무가 유명하다고 한다. 이 나무는 표피가 유난히 매끈하다. 여름날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해서 백일홍으로 부르기도 한다. 화자는 꽃을 달고 서 있지 않은 겨울 배롱나무가 안쪽에서부터 부풀어 오르고 있음을 직감한다. 아픔을 견디면 언젠가는 만물이 생동하고 꽃들이 사방에 비 오듯 내리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세상을 한 바퀴 휘돌아 나온 자의 성찰이 느껴지는 시다. 그래서 산문시인 데도 묵중한 리듬이 느껴진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배롱나무의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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