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무화과 숲-황인찬(1988~)

~Wonderful World 2019. 4. 4. 10:49
무화과 숲
-황인찬(1988~)
 

시아침 12/23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 숲’은 현실에는 없는 상징의 장소다. 그 사람은 그리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시의 화자는 숲으로 가는 길을 보며 묵묵히 밥을 지어 먹고는 잠든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 무력한 되풀이는 연명에 가깝도록 졸아든 삶을 보여 준다. 이것 말고는 다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상실의 슬픔은 ‘사랑’을 내려놓은 적이 없는 듯하다. 그에게는 숲으로 가는 길도 세상으로 나가는 길도 주어져 있지 않지만,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은 현실에 없는 장소인 ‘꿈’을 찾아낸다. 그의 모든 생의 에너지는 여기에 투여된다. 꿈도 현실이라 믿는 사람은 몽상가가 아니다. 그저 끝까지 사랑하려 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무화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