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의 나무
-안상학(1962~ ) 
꽃잎 떨궈
깊이도 쟀다
하 많은 가을
마른 잎 날려
가는 곳도 알았다
머리도 풀어헤쳤고
그 어느 손도 다 뿌리쳤으니
사뿐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제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할 것이다
깎아지른 벼랑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이 있다. 한 번도 상승해보지 않은 그의 삶은 늘 그대로다. 벼랑의 높이는 그에게 죽음의 깊이다. 모든 집착과 미련을 버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벼랑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신발만 벗는다면 그는 낙하하는 한 점 꽃잎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신발이라는 마지막 끈은 그를 벼랑에 단단히 옭아 묶고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삶이란 죽음보다 질겨서.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벼랑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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